중국의 정식적인 국호는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국호가 만들어진 과정과 중국이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 및 국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중국의 국호와 의미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전에는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이라 불리었습니다. 또한, 타이완을 중국 혹은 자유 중국이라고 불리었으며, 역사적으로는 한반도의 서쪽에 있는 대륙을 중국이라고 칭해왔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중국이 처음부터 중국이라는 국명을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이는 가운데에 있는 지역을 의미하며, 수도 또는 한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나라로 뜻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진한 시기에 중국 전역이 통일이 되면서 약간의 색채가 가미되어 천자가 있는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근대 국가의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이였기 때문에 주로 지리적이나 문화적 의미로 중국이라는 어휘가 이용된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이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정치적인 국명으로서 대외적으로 이용되어 온 것은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때입니다.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가 1689년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으면서 전권대표를 이때부터 중국이라는 명칭으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식 국명은 청 혹은 대청이었고 중국이라는 명칭은 국호의 별칭 정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대 국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렇게 일반명사로만 사용되던 중국이 정식 국호로 사용되게 된 것은 1911년 중화민국의 수립 이후입니다. 즉, 중화민국을 줄여서 중국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정식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공화국 건국과 같이 제정 및 공표되었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을 나타내는 국기와 국장
중국국기의 경우에는 오성홍기입니다.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빨간 바탕에 5개의 황색 별이 좌측 상단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때, 빨간색은 혁명을 뜻하고 황색은 광명과 함께 황색인종이라는 인종적인 특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5개 별 가운데서 가장 크게 그려진 별의 경우 중국공산당을 의미하고 이것을 둘러싼 4개의 작은 별들은 농민과 노동자, 도시 소자산계급, 민족자산계급을 나타냅니다. 혁명 열사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에 모든 중국인이 대동단결하여 함께 지켜나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5개의 별과 이것이 대표하고 있는 상징성은 중국을 상징하는 국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국장은 가운데에 5개의 별이 있는 천안문이 있으며, 그 주변을 곡식의 이삭과 톱니바퀴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천안문의 경우에는 5. 4 운동의 첫 시작점이며, 마오쩌둥이 신 중국 건국을 선언한 곳으로써 민족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곡식 이삭은 농민과 풍요를 뜻하고 톱니바퀴는 노동자와 발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국장은 1950년 6월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인민대회당 등의 정부 주요 기관의 문 앞이나 동전 뒷면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성홍기는 공모한 3,000여 개의 도안 가운데서 선정되었으며, 1949년 9월 27일에 공식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 회의의 경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회의로 중국공산당과 각 소수민족, 인민단체 및 해외 화교대표 등 622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더불어, 오성홍기 국기 제정뿐만 아니라 수도를 베이핑으로 정하고 베이징으로 개명까지 하였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하는 국화
중국을 가장 대표하는 상징 중에서 국화는 공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꽃의 경우 모란이지만 이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지정한 국화는 아닙니다. 1980년대부터 국화 제정과 관련하여 많은 요구가 있었지만 주로 북방 지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모란과 창장이남, 남방 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매화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 아직까지 공석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화를 선정하는 활동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국화로 선정될 꽃에 대한 3가지 필수사항이 있었습니다. 첫째, 중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역사가 오래된 자생종으로 재배되는 지역이 광범위하고 국제적으로 중국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우 우수한 품종이어야 합니다. 둘째, 중화민족의 우수한 특성과 전통을 반영하는 꽃이어야 합니다. 셋째, 모든 국민이 좋아하고 사회경제적인 이익 창출에서 가장 유리한 꽃이어야 합니다. 이로써, 1994년 10월에 전국 곳곳에서 국화 선정을 진행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모란을 국화로 선정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농업부에서는 선정 결과를 유보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2005년 가을에 개최된 한 회의에서 모란을 국화로 제정하자는 안건을 다시 의결하여 보고하였지만, 매화를 국화로 채택하자는 반대파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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